한의학 기초이론
1. 기초이론
한의학도 서양의학과 마찬가지로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구분하며 한의학의 이론체계와 신체 및 질병에 대한 내용은 주로 기초의학에서 다룬다. 한의학은 단순한 경험의학이 아니라 임상에 대한 경험과 가설에 의한 경험의 축적 그리고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을 거쳐서 생명, 인체, 질병 그리고 치료원칙을 설명하는 체계적인 이론이 성립되었다. 경험의학의 상대적인 의미로 과학의학을 말하기도 하지만 과학적인 접근도 가설에 근거한 검증, 검증을 통한 경험의 축적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어떠한 의학이라도 이론으로 완전하게 설명되지 않더라도 질병치료를 위해 가설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이를 경험으로 새로운 이론체계를 만들면서 이론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야 하는 실천학문의 특성이 있다.
(1) 육안적 관찰과 직관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서 관찰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혹은 어떠한 도구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관찰 결과의 차이가 나타나므로 관찰 결과를 객관적으로 표현할 때 매우 중요하다. 의학에서 신체와 질병을 관찰하는 방법이나 기준은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거나 기계적인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기계적인 도구를 이용한 관찰은 인간의 감각범위를 초월한 정밀성과 높은 재현성을 바탕으로 객관성 확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발전하여 왔다. 특히 서양의학에서는 육안해부학에서 전자현미경 수준으로 발전하여 세포단위에서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관찰은 신체에 대한 관찰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에 대한 관찰로 확대되고 있으며 동시에 치료에서도 나노입자 수준의 로봇이용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학발전에 따른 도구개발은 신체의 관찰이나 치료수단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한의학에서도 새로운 현대기기를 응용하여 한의학 이론이나 임상 데이터를 해석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지만 결과해석에 따른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여전히 고전의 기준이나 관찰 방법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감각에 의존한 관찰이 주관적이고 재현성이 낮은 한계가 있지만, 동물적 본능이나 초감각적인 현상이 여전히 과학적으로 해석되지 않더라도 진가를 발휘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지진예보에 이용되는 도구가 아무리 첨단화되어도 동물들의 본능적 반응이 지진예보에 도움이 되며, 수련을 통한 감각으로 환자의 상태를 의사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반응함으로써 진단에 활용하는 예들은 비록 객관성이나 재현성 확보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도구를 이용한 관찰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체나 질병을 관찰할 때 감각적인 관찰 경험의 누적은 직관으로 이어져 유능한 한의사의 직관은 도구를 이용한 관찰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물론 이러한 경우가 한의학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며 경험을 중요시하는 기술 분야 심지어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종이를 전자저울로 계량하지 않아도 종이를 오래 취급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만져보면 몇 파운드짜리인지 알 수 있거나, 비파괴검사기라는 첨단기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망치로 두드려 소리를 듣고서도 균열이 있는지를 알 수 있거나, 머리카락이나 피부 상태만으로도 성격을 분석할 수 있으며 관상을 보고 삶의 이력을 추적하는 예들도 있다.
(2) 기 : 자연과 인체를 하나로 보는 근거
서양의학은 생물학에서 식물학과 동물학, 동물학 중에서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분류되며, 의학서적의 내용도 분석적 방법을 통하여 전체를 이해하는 환원주의 방식 때문에 세포, 조직, 기관으로 혹은 순환기계, 호흡기계, 소화기계, 비뇨생식기계, 뇌신경계, 호르몬계 식으로 신체를 설명한다. 그런데 한의학은 자연과 인체의 관계를 동등하게 보면서 자연과 인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근거로 기(氣)를 설정하고 사람을 신체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 혹은 사람의 발생을 같이 취급하거나 우주의 소멸과 사람의 죽음 혹은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방식으로 사람을 설명하면서 자연으로 확장시켜 설명한다. 그리고 신체를 관찰하는 기준이나 자연을 관찰하는 기준의 구분도 없으며 그 구성조차도 동일한 것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이나 설명과정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기 그리고 음양, 오행이다.
음양이나 오행조차도 사물을 구성하는 성분 혹은 부분으로 해석하는 경우에는 결국 음양오행이 기준이나 설명의 도구가 아니므로 기 개념에 포함된다. 따라서 자연과 인체를 하나로 설명하는 저변에는 결국 기라는 개념이 있다. 음양오행으로 자연과 인체를 관찰하므로 동일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인체가 모두 기로 구성되었다고 보거나 그 자체가 기의 변화라고 보는 입장 때문에 자연과 인체는 하나로 인식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간과 공간으로 관찰되는 우주도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며 우주의 모든 변화가 바로 기의 변화 결과 혹은 기 그 자체의 변화로 본다. 우주의 탄생을 기의 이합집산으로 설명하거나 사람 역시 자연에 속한 기의 일부로 보고 기의 이합집산으로 보는 방식이 바로 자연과 사람을 함께 보는 근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는 신체와 정신을 같은 범주에 포함시켜 하나의 장부에 신체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를 결부시키고 치료방법도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기라는 개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감정의 변화가 특정 장부에 영향을 미치고 특정 장부의 상태가 감정변화로 나타난다고 본다.
서양의학이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반면, 한의학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신체 내외의 모든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는 이유도 바로 기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3) 공간 : 전후좌우의 방위와 상하
우주(宇宙)가 시간과 공간으로 관찰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공간의 문제는 우주를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에 불과하고, 땅에 발을 붙이고 매일 관찰하는 우주는 소박하게 보면 밤낮의 변화가 있는 하늘과 땅이라는 한정된 공간이자 반복되는 변화의 시간이다. 이처럼 공간과 시간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관찰된다.
우주를 관찰하는 자신이 존재하는 그 자체가 이미 공간의 중심이 되고 자신이 관찰자가 되어 우주변화를 관찰하면 공간은 자신의 전후좌우 사방(四方)이라는 이차원적 평면공간과 하늘과 땅을 이루는 위아래를 포함한 육합(六合)이라는 삼차원의 입체공간이 된다.
신체도 우주와 같이 육합의 공간으로 보면 상하좌우전후로 구분된다. 위로는 머리가 하늘에 연결되고 아래로는 다리가 땅에 맞닿아 있고 정남쪽을 향한 자세에서 왼쪽 옆구리나 팔은 동쪽이 되고 오른쪽 옆구리나 팔은 서쪽이 되며 앞쪽 배는 남쪽이 되고 뒤쪽의 등은 북쪽이 된다.
시간도 공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루에서 아침은 동쪽이 되고, 한낮은 남쪽이 되고, 저녁은 서쪽이 되고, 한밤중은 북쪽이 된다. 같은 방식으로 1년도 공간으로 해석하면 바로 봄은 동쪽이 되고, 여름은 남쪽이 되며, 가을은 서쪽, 겨울은 북쪽이 된다. 물론 아침과 봄 그리고 동쪽은 모두 따뜻한 기운으로 동일한 성질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에 공간을 시간과 함께 연결할 수 있다.
전신을 소통하는 기운이 신체라는 공간에서 일정한 경로를 가지고 순행한다고 볼 때, 인체의 경락을 육경(六經)이라는 용어로 이름을 붙인 것도 공간의 기준이 되는 육합과 같이 자연과 인체를 하나의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4) 시간 : 하루와 사계절 그리고 우주의 사계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시간변화의 주기가 가장 짧은 단위는 하루가 된다. 하루의 시간변화는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면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해가 지면 밤이 되고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를 하루라고 하는데 밤낮의 변화주기는 공간상의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에서 낮이 끝나고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에서 밤이 끝나므로 시간변화는 공간적으로도 연관된다. 그리고 하루이외에 1년도 주기적으로 계절의 기후가 변하고 동식물의 상태가 변하므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봄이 되면 기후가 따뜻해지고 바람이 많이 불면서 모든 동물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식물은 새싹을 피우거나 꽃 봉우리를 틔우기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기후는 더워지고 점차 열기가 더해지며 동물들도 더위로 인하여 땀을 흘리거나 늘어지게 되며, 식물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새싹은 가지를 무성하게 뻗어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가을이 되면 기후는 건조해지고 온도는 서늘하게 변하며 동물들도 털갈이가 일어나고 털의 윤기도 점차 없어지며 식물의 나뭇잎은 말라 낙엽이 되고 꽃은 열매를 맺고 과실이 된다. 겨울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동물은 추위를 피해 땅속으로 숨어들거나 활동을 줄이고 나무는 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열매는 떨어져 다시 땅속에 묻혀 다음 해 봄의 싹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처럼 밤낮으로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반복되는 큰 변화는 관찰이 가능하다.
기후변화에 따라 생명체의 활동이 변하듯이 사람의 삶 또한 마찬가지라고 보았으며, 사람의 삶이 기후변화에 따라 변한다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신체 내 장부나 경락 등도 이러한 변화와 같은 일정한 주기가 있고 그 변화와 동시에 변한다고 인식한 것이 바로 한의학의 생명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사람의 양생(養生)에서도 계절기후 변화에 따른 생활양식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5) 천문, 지리 그리고 인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늘의 뜻과 땅의 이치를 깨닫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해야 함을 강조할 때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사(人事)에 능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병이 생기지 않으려면 기후변화에 맞추어 생활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거환경이 좋아야 함을 물론이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므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변화가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에 의한 질병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이 세 가지가 의학적인 의미를 가진다.
천문(天文)은 하늘의 문자 즉 하늘이 어떠한 뜻을 나타내는 표식이라는 의미로, 천문에 능하다는 것은 하늘의 조짐을 헤아려 생활 및 삶의 방향을 제대로 모색하는 것이다. 천문을 개인의 삶과 직접 연관시켜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이 된다. 사주명리학의 의학적 가치는 자신이 태어날 당시의 기후조건과 같은 환경에 맞추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양생의 원칙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지리(地理)는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뜻하는데 바람과 물이 지형을 변화시키고 모든 사물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힘이 미치지 않는 편안하고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서 땅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이다. 좋은 자리를 찾는 것은 살아있을 때는 건강을 위하고 죽은 뒤에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인사(人事)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일이다. 가장 작은 단위의 인사는 가족, 크게는 국가가 되며 요즈음과 같은 글로벌시대에는 전 인류와의 관계가 바로 인사가 된다. 한의학에서 인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생기게 되는 감정적 변화로 인한 병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중요하다. 특히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사람이 타고 난 본성 때문에 감정발현이 개인마다 다르고 감정의 치우침이 생리기능의 이상을 초래하므로 개인차를 감안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명상도 사람간의 관계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며 인사와 관련된 중요한 과제가 된다.
우주와 인간으로 비록 구분하지만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주도 사라진다는 입장에서, 시공간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 관찰하는 결과일 뿐이며, 사람간의 관계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 상호 반응하는 것이다. 우주와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이유도 모든 것을 기 하나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이러한 관점은 자연관, 생명관, 질병관, 치료관, 양생관을 이해하는 관건이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2. 음양
음양은 오행과 함께 합쳐 ‘음양오행’이라고 하며, 이는 의학뿐만 아니라 점성술, 천문역법, ㅇ정치, 음악에 이르기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쳐 연구 분야가 광범위하다.
흔히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음양’이라는 용어 때문에 한의학을 철학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음양이라는 분야가 중국철학의 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음양가(陰陽家)는 우주가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원리의 화합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만물을 생성한다고 믿는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고 이후 제자백가에 포함되었다. 이들 학파의 사람들은 대부분 상고시대 천지사시(天地四時)를 담당하던 관리들이었고, 이들은 하늘을 존중하고 일월성수(日月星宿)의 운행을 추산하여 천문(天文)을 보고 농사철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음양이 비록 오행과 함께 중국 철학사상의 자연관에서 주로 다루어 졌지만 중국문화의 다양한 부분에서 사용되는 용어 혹은 도구개념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으며, 한의학에서도 음양은 구체적 실체를 뜻하는 경우보다 어떠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 혹은 기준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사물의 상반된 두 가지 성질을 설명하거나, 짝이 되어 대비되는 두 사물을 설명하는 경우에 음양은 성질이나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예를 들어 팔의 안쪽을 음, 바깥쪽은 양으로 분류하고 여기에 경락의 음경(陰經)과 양경(陽經)을 각각 배치시키거나, 음이 부족하면 양이 많아지고 양이 부족하면 음이 많아지는 방식으로 생리와 병리를 설명한다.
물론 한의학에서 질병의 예방이나 양생에 있어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자연관이나 우주관의 음양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며, 역법(曆法)을 추산하여 자연기후를 파악하는 운기학설에서도 계산과정에서 음양오행을 사용한다.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음양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개념이다.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음양의 의미는 음양의 최초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으며, 특히 음양이라는 단어는 시대에 따라 개념이 변하고 점차 개념이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한의학에서 활용하는 경우 그 의미를 한정시켜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양의 서지학적 최초기록과 관계없이 의미상 유래를 명확히 할 수 없지만, 사물판단의 초보적인 근거에서 출발하여 그 추상적 의미가 사회 전 분야에 활용되면서 의학에서도 이를 수용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역사적 기록이나 철학적 검토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자신을 제외한 외부세계, 빈 공간인 하늘과 단단한 실체를 가진 땅, 자신을 나아준 부모인 남자와 여자라는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사물을 짝 지워 판단할 때 그 속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
(1) 음과 양의 관계
음양은 음과 양이라는 두 글자로 한 단어를 이루므로 글자 각각의 의미와 한 단어로서의 의미가 있다. 음과 양은 어두운 그늘과 햇빛이라는 상반된 뜻으로부터 유래되어 서로 대립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음양을 음과 양의 두 글자로 볼 때는 하나의 사물에 반드시 대립되는 사물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음양을 한 단어로 볼 때는 한 사물에 상반되는 두 가지 속성이 모두 들어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음양의 상호대립 개념이라 한다. 음과 양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로 대립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상대(相對), 대대(待對)]
또한 음양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한다고 여기는 기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이 둘은 각각 따로 떨어진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본다. 이를 음양의 상호의존 관계라 한다. 예를 들어 음양의 상호대립은 한 사물이나 두 가지 사물이 음양이라는 두 속성에 따라 구분되지만 이들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 관계는 음양으로 구분되는 어느 한 쪽만으로 존재할 수 없고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음이 있어야 이에 짝이 되는 양이 성립하고 양이 있어야 이에 짝이 되는 음이 성립한다는 뜻이다. 마치 하늘과 땅, 남과 여 등으로 구분하지만 이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일반적으로 음양은 서로 뿌리가 되고 서로 쓰임이 된다고도 말한다[상호의존(相互依存), 상호자생(相互資生), 상호제약(相互制約)].
음양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거나 변화과정을 시간에 따라 관찰하면 음과 양이 양적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동시에 존재하고, 음이나 혹은 양에서 시작하였더라도 시간이 흐르거나 일정한 조건에 따라 음이 양으로 혹은 양이 음으로 변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를 음양이 서로 뒤바뀐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계절의 변화를 양에서 음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고, 양이 왕성하게 되었다가 소멸하고 음이 소멸되었다가 왕성하게 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으며, 양에서 음으로 혹은 음에서 양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변화과정을 음양의 상호전화로 보기 때문이다[상호전화(相互轉化), 소장성쇠(消長盛衰), 편성편쇠(偏盛偏衰)].
음과 양의 관계는 결국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사물들을 두 가지 속성에 따라 구분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독립적으로 보지 않으며 동시에 그 상태를 항상 움직이며 변화하는 동태적인 입장으로 파악하며 또한 이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안정적인 평형을 스스로 유지한다는 의미 요약할 수 있다.
(2) 음양에 따른 사물의 분류
음양은 밝고 어두운 의미가 확장되어 모든 사물이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자연계를 비롯한 관념적인 대상까지도 두 가지 속성을 내포하고 있거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인식하므로 음양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며 이를 음양의 속성에 따른 분류 혹은 사물의 두 가지 속성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분류방식에 따라 사물을 구분하는 능력은 음양 그 자체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상을 관찰할 때 두 가지 속성으로 구분하는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흔히 이러한 능력이 의학이나 자연관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학자들은 음양의 시대별, 학자별 음양에 대한 개념을 섭렵하고 그 사례들을 많이 접하면서 실제 현장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음양이라는 두 가지 속성에 따라 사물을 이해하거나 분류하는 이러한 인식방법은 아주 단순하고 개괄적인 인식방법이지만 이러한 인식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할수록 명확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능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의학에서 자주 인용되거나 활용하는 내용은 크게 자연과 인체의 공통되는 기준이다.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 연 |
음양 (속성 및 사물) |
인 체 | ||||
시 간 |
공 간 |
명 도 |
성 분 |
기 관 |
부 위 | |
석(夕) |
지(地) |
암(暗) |
음 |
혈(血) |
장(臟) |
리(裏) |
조(朝) |
천(天) |
명(明) |
양 |
기(氣) |
부(腑) |
표(表) |
이러한 초기의 음양에 따른 분류나 음양의 기준은 역대 의학자들이 임상경험을 근거로 새로운 해석과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의학에서 음양개념은 확대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도 있다. 그러므로 중량이나 밝기를 기준으로 하면, 가볍고 밝은 것은 양, 무겁고 어두운 것은 음이라고 볼 수 있고, 위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관찰이 가능한 바깥쪽은 양, 숨겨져 관찰이 불가능한 안쪽은 음이 되듯이 음양에 따른 사물의 분류는 반드시 기준과 대상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하며 특히 진단이나 치료에 있어서 이점에 주의해야 한다.
(3) 음양의 의학적 운용
1) 인체구조의 설명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구조도 자연계의 사물과 마찬가지로 상대가 되는 구조가 있다는 관점에서 신체를 관찰한다. 마치 하늘과 땅이 상하로 나누지듯이 이에 대응하여 신체의 위쪽은 양이 되고, 아래쪽은 음이 된다. 물론 이때 머리는 양이고 팔 다리를 포함한 몸통은 음, 횡경막 위쪽은 양이고 그 아래쪽은 음, 단전(丹田) 위쪽은 양이고 그 아래쪽은 음 등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상하에 따른 음양은 달라 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체구조를 움직임에 따라 관찰하면 팔다리를 비롯한 머리는 양이고 몸통은 음이 될 수 있다.
신체를 외부에서 관찰할 때 빛이 비치는 쪽은 양, 빛이 비치지 않는 그늘진 쪽은 음이 되어 팔다리 안쪽은 음이 되고, 바깥쪽은 양이 된다. 그리고 신체를 해부할 경우 속에 해당하는 부위는 음, 겉에 해당하는 부위는 양이 되므로 흉복강은 속[리(裏)]이 되어 음, 머리를 비롯한 팔다리는 겉[표(表)]이 되어 양이 될 수 있다. 태아는 배속에서 웅크린 자세로 있기 때문에 등[배(背)]은 단단한 척추들로 겉이 되어 양, 배[복(腹)]는 부드러운 살로 속이 되어 음으로 볼 수 있다.
2) 생리기능의 설명
생리기능은 생명을 유지하는 관건이 되는데, 한의학에서도 서양의학의 항상성 개념과 유사하게 음과 양이라는 상대적인 기운이 스스로 서로간의 평형을 유지한다고 본다. 즉 생리기능의 유지를 음과 양의 상대적 평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음의 기운이나 양의 기운이 부족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상대적 평형을 유지함으로써 외부적으로 음이나 양의 기운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 예를 들어 병리적인 음증(陰證)이나 양증(陽證)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음과 양의 양적인 평형유지와 달리 음양이 고유하게 담당하는 기능부위에도 음양의 평형유지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머리는 차게, 팔다리는 따뜻하게’ 혹은 ‘가슴은 서늘하게 아랫배는 따뜻하게’라는 표현은 음과 양이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려면 뜨거운 기운인 양은 아래로, 찬 기운인 음은 위로 작용해야 하며 이를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표현한다.
신체기능을 유지하는 주요기관인 장부와 경락도 음양으로 역할을 구분한다. 흉복강 안에 있는 장부는 음이 되어 우리 몸에 필요한 정기(精氣)를 음식물로부터 만들어 저장하고, 경락은 흉복강 밖에 있는 팔다리 머리에 있으면서 장부에 저장하고 있는 정기를 받아 전신에 소통시키는 기능을 함으로써 장부와 경락은 각각 저장인 음과 소통인 양으로 구분한다.
장부와 경락도 기능에 따라 세분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장부는 장과 부로 구분하여 장은 음식물로부터 만들어진 정기와 정신(精神)을 저장하므로 음이 되고, 부는 창고에 곡식을 넣고 빼는 것처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과정의 통로로 양이 된다. 또한 경락도 장에 짝이 되는 경락은 음경, 부에 짝이 되는 경락은 양경으로 세분되는데, 예를 들어 폐에는 수태음경, 대장에는 수양명경이 짝이 된다.
3) 병리변화의 설명
병의 발생원인은 내인(內因), 외인(外因)으로 크게 구분하지만 신체에 발생하는 병리변화는 생리적인 음양의 평형이 상실되면 병이라고 본다. 음양의 평형은 신체 내부의 정상적인 음이나 양이 부족해짐으로써 평형이 깨어지는 경우와 신체 외부에서 비정상적인 음이나 양이 침범함으로써 음이나 양이 지나치게 되어 평형이 깨어지는 경우가 있다. 내부에서 음양의 평형이 상실되는 경우는 대부분 정기(正氣)가 부족해서 생기는 허증(虛證)이 많고, 외부에서 비정상적인 기운인 사기(邪氣)가 지나쳐서 신체를 침범하여 생기는 경우는 대부분 실증(實證)이 많다. 어떠한 원인이나 조건에 따라 발생하더라도 궁극적인 병리변화를 음양의 평형상실로 파악하는 것이다.
신체 내 평형상실의 다른 기전으로 수승화강의 생리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위로는 열이 오르고 밑으로는 찬 기운이 몰리는 수화불교(水火不交)로 인한 음양평형 상실도 있다. 이는 양적인 부족이나 지나침이라는 관점보다 기운이 제대로 기능하는 부위에 작용하지 않음으로써 병이 발생한다는 관점의 병리변화이다.
4) 진단과 치료
진단은 병을 알기 위하여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신체의 음양을 살피는 것이다. 신체내의 생리적 음이나 양이 부족[허(虛)]한지, 병리적 원인인 음이나 양이 외부에서 침범[실(實)]하였는지, 병의 부위가 겉[표(表)]인지 속[리(裏)]인지, 병의 성질이 열(熱)인지 한(寒)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때 부위에 따라, 표는 양, 리는 음, 성질에 따라 열은 양, 한은 음, 정기와 사기에 따라 허는 음, 실은 양 등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리, 한, 허증은 음증으로 보고, 표, 열, 실증은 양증으로 본다.
신체의 한열(寒熱)은 음양의 평형이 유지되는지를 판단하는 개괄적 기준이 되는데, 소변(小便), 대변(大便), 설태(舌苔), 맥(脈)의 상태를 각각 청장(靑長)과 단적(短赤), 설사(泄瀉)와 변비(便秘), 백태(白苔)와 황태(黃苔), 침지(沈遲)와 부삭(浮數)으로 나누어 한열을 판단하는데 이는 신체의 음양평형 상태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치료법은 일반적으로 음양의 평형회복을 목적으로 하므로 반대의 성질을 보충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예를 들어 음증에는 양, 양증에는 음을 보충하게 된다. 대부분 기(氣)약은 양, 혈(血)약은 음의 성질이 많고, 약의 성질에 따라 한량(寒凉)약, 온열(溫熱)약으로 구분하며 맛에 따라서 몸을 차게 하는 맛과 몸을 따뜻하게 혹은 열을 내게 하는 약을 각각 찬약, 따뜻한 약으로 구분하여 병의 성질과 반대되는 약으로 치료한다.
침구(鍼灸)치료를 상대적으로 보면 침은 열증(熱證)에, 구는 한증(寒證)에 적합한 치료법이라고 한다. 침치료에서도 열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경락과 한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경락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치료방법인 보법(補法)과 사법(瀉法), 청법(淸法)과 온법(溫法), 토법(吐法)과 하법(下法)도 음양에 따른 상대적인 치료원칙이다. 음양원칙에 맞으면 약이 된다. 정기가 부족하면 보충하고, 사기가 있으면 밖으로 내몰면서, 열이 있으면 서늘하게 만들고 차면 따뜻하게 만들며, 위 혹은 아래로 배설시키게 된다.
5) 예방과 양생
한의학에서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병을 미리 막기 위한 예방이나 더 나아가 양생을 통하여 생기를 제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도인법이나 수련법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생리기능의 큰 원칙이 되는 음양의 평형유지와 수승화강의 원칙은 생기를 기르는 양생의 기본원리가 된다. 머리는 차게 하고, 손과 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 가슴은 서늘하게 하고, 아랫배는 따뜻하게 하는 것, 여름에도 배는 이불을 덮는 것이 모두 이러한 양생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수승화강의 양생원칙은 자연과 신체를 동일한 원리로 보았기 때문에 자연계의 물과 같이 찬 기운과 불과 같이 뜨거운 기운으로 기의 흐름을 설명하면서, 뜨거운 기운은 불꽃처럼 위로 치솟지만 자연의 변화를 유지하거나 신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되고, 물과 같이 찬 기운은 위로 올라가야 기 순환이 이루어져 생명이 유지된다고 보았다. 기공수련의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은 따뜻한 기운을 내려주고 찬 기운을 올려주는 원리에 따라서 전신의 기를 순환시키는 형식이다. 또한 한복이나 한옥의 설계도 이러한 원리를 반영하여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음식을 통한 양생은 음양의 기운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찬 성질이나 열이 많은 음식을 가끔씩은 먹을 수 있지만 장기간 먹게 되면 음양의 평형을 깨트릴 수 있다. 요리는 반드시 찬 성질이 있는 재료와 열이 있는 재료를 함께 사용하여 음양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음양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음식이 아니라 약이 되기 때문이다.
3. 오행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로 이는 자연계와 인체의 변화를 설명한다. 오행이 처음부터 목, 화, 토, 금, 수를 말하지 않았지만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는 추상적 개념이 성립되는 단계에서 다섯 종류의 운행을 뜻하는 오행과 당시 생활에서 필수적인 사물로 파악되었던 나무, 불, 흙, 쇠, 물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연관시키면서 오행학설이 성립되었고 이러한 개념이 한의학의 이론체계로 정착되었다.
음양과 오행은 기원이나 개념발전 과정이 다른데, 음양은 오행보다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반면 오행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행은 자연관찰의 원리를 인체에 직접 적용시키는 논리적 기반이 되는데, 예를 들어 봄을 인체의 간(肝)과 직접 연관시키거나 해가 뜨는 동쪽과 간기(肝氣)의 상승으로 나타나는 감정변화인 노(怒)를 연관시키는 근거가 바로 오행의 속성이다.
오행의 본래 의미는 대체로 사람에게 쓰이는 다섯 가지 물질[오용(五用)], 다섯 가지 법칙[오도(五道)], 다섯 가지 덕행[오덕(五德)], 다섯 가지 유형[오류(五類)], 다섯 개의 행성[오성(五星)], 다섯 가지 기운[오기(五氣)]이라는 설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오행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의미 분석인데, 종합하면 다섯 가지 물질인 오행이 스스로 움직이며 각기 그 특성에 따라 다섯 부류로 나누어지며 이들은 자연계의 모든 사물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인식의 기반에도 음양과 마찬가지로 기(氣)개념이 전제된다.
오행을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과 비교하여 5원소(Five Elements)로 이해하는 것은 오행을 다섯 가지 물질로 국한하고 이들 물질이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라고 해석하게 되는데 이는 본뜻과 다르다. 오히려 다섯 가지 상태(狀態: 상(相), 상(象), Five Phases]라는 의미를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오행의 의미
오행은 음양과 달리 오행(五行)이라는 단어와 오행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각 단어들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행이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다섯 가지인 목, 화, 토, 금, 수를 지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행의 글자 뜻과 관련하여 『설문해자』에 오(五)는 ‘二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음양이 항상 교류하는 모양’이라고 하였고, ‘×는 음양이 서로 사통팔달하는 형상’이라고 하였으며, 행(行)은 ‘╬로 사통팔달하는 움직임’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오행’은 생활에 필요한 다섯 가지 실용적인 재료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만물을 개괄적으로 분류하는 원칙이나 단위로 발전하였다. 최근 보고에서는 오행이 목·화·토·금·수라는 다섯 가지 실용적인 재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청동기가 고도로 발전한 은대(殷代)이후에 금(金)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전에는 수·화·목·토의 네 가지 사물과 동서남북의 사방(四方)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자신이 관찰자로서 중심이 되어 자연을 관찰한 개념과 연관이 있다. 즉 앞서 기, 공간, 시간에서 언급한 자연관찰의 기준이 가장 원시적인 자연관찰 기준이었으며 이 기준이 후대에 와서 추상적인 오행개념과 결부되어 다섯 가지로 확대되었다고 본다.
(2) 오행간의 관계
오행간의 관계는 목·화·토·금·수 다섯 사이의 상호관계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상생상극(相生相克)을 말한다. 상생상극은 다섯 사이의 정상적인 균형이 이루어지는 내부적 관계를 설정한 것으로 이들은 폐쇄적인 순환관계를 전제로 성립한다. 이들 사이의 균형이 상실되는 경우에는 상생상극관계에 있는 어느 하나를 도와주거나 억제함으로써 균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가 되며 그 활용은 장부 사이의 관계나 경락 사이의 관계 혹은 경혈 사이의 관계 등에서 활용된다.
1) 상생과 상극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은 목·화·토·금·수 다섯 사이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체계이다. 상생은 목→화→토→금→수→목의 순서대로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낳고 도와주는 관계이고, 상극은 상승설과 같이 목→토→수→화→금→목의 순서대로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이기고 억제하는 관계인데 상생과 상극은 모두 순환체계로 설명한다. 상생이나 상극과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오행을 지칭할 때 목화토금수로 말하는 것은 춘하추동의 사계절 순서에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이론에서 상생상극은 오행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다섯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평형상태의 관계를 의미하는데 이는 마치 음양이 서로 다른 대립된 성질이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두 측면으로 관찰하는 것과 같다. 사물을 다섯 가지 속성으로 분류하면서 이들 간에는 서로 도움과 억제하는 관계가 있으므로 이들은 서로 간에 균형을 유지시킬 수 있으며, 균형을 잃게 된 경우에 상생 혹은 상극의 관계를 이용하여 지나친 것을 억제시키거나 부족한 것을 도와주면 직접 해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목이 부족할 경우 수를 돕는 것은 상생관계를 이용하는 것이고 금을 억제시키는 것은 상극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며, 목이 지나칠 경우 화를 억제시키는 것은 상생관계를 이용하는 것이고 금을 도와주는 것은 상극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3) 오행에 따른 사물의 분류
오행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음양의 방식보다 조금 복잡하다. 음양에 따르면 단순히 대립되는 두 가지 속성이나 측면을 구분하여 분류하면 되지만 오행에서는 단순히 다섯 가지인 목·화·토·금·수의 속성만으로 사물을 구분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오행개념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방식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식은 목·화·토·금·수가 다섯 가지 실용적인 재료인 나무, 불, 흙, 쇠, 물로부터 기원하였으므로 이들 사물의 속성에 따라 다른 사물에서도 그 속성을 찾아 오행으로 분류하는 방식이 있다. 이외에도 한 사물에서 다섯 가지 기능이나 역할로 구분하고 이들 사이의 상호 연속적인 작용을 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 경우에는 다섯 가지 사물의 속성을 따르지 않고 사계절이나 방위 혹은 기후 등의 속성과 연관시켜 사물을 분류하게 되며, 또한 의학의 실제 임상경험에서 검증한 내용을 다섯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오행의 가장 오랜 기원으로 삼고 있는 ‘홍범편’을 근거로 할 때 수(水)는 물이고 물은 윤하(潤下)라 하여 물은 사물을 적시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연계에서 물처럼 사물을 적시거나 아래로 흘러내리는 성질을 가진 것은 모두 수(水)로 분류하는 방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사계절에 장하(長夏) 혹은 계하(季夏)라는 계절을 설정하여 1년을 다섯 단계의 주기로 분류하는 방식에서는 토(土)의 가색(稼穡)과 연관된 속성과는 무관한 분류방식이다. 또한 감정의 분류에서 노(怒)를 봄과 함께 목으로 분류하는 것은 감정변화가 지나칠 때 나타나는 열감이 봄의 따뜻한 기온과 일치하므로 노(怒)와 봄을 목으로 분류하는 것은 직접적 연관이 아니라 감정과 계절기후사이에 온기(溫氣)라는 공통점에 따라 분류한 것이므로 목과의 연관은 이차적이며 임상적인 관찰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음양과 마찬가지로 오행에 따른 사물의 분류도 자연과 인체로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는데 아래의 표와 같다.
자 연 |
오행 (속성 및 사물) |
인 체 | ||||
시 간 |
공 간 |
물 후 |
성 분 |
기 관 |
부 위 | |
평단(平旦) |
동(東) |
청(靑) |
목(木) |
혈(血) |
간(肝) |
근(筋) |
일중(日中) |
남(南) |
적(赤) |
화(火) |
신(神) |
심(心) |
혈맥(血脈) |
일서(日西) |
중앙(中央) |
황(黃) |
토(土) |
영(營) |
비(脾) |
기육(肌肉) |
합야(合夜) |
서(西) |
백(白) |
금(金) |
기(氣) |
폐(肺) |
피모(皮毛) |
야반(夜半) |
북(北) |
흑(黑) |
수(水) |
정(精) |
신(腎) |
골(骨) |
(4) 오행의 의학적 운용
1) 인체구조의 설명
음양과 마찬가지로 오행에 근거하여 신체의 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자연계의 사물과 인체의 모든 구조들은 다섯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물론 사물의 구조를 단순히 다섯으로 구분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이들 사이에는 안정적인 평형을 이루는 기능상의 연관관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음양처럼 구조를 한 사물의 대립적인 짝이거나 사물의 두 측면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즉 구조와 별개로 기능 혹은 역할에 근거하여 구분하기 때문에 구조와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여 구조만으로 다섯을 구분하였다고 보는 것이 무리도 있다는 것이다.
신체의 외부에서는 오관(五官)이 가장 두드러진 관찰대상이 된다. 흔히 사람의 특징을 외모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얼굴의 감각기관이 체내 구조의 기능이 밖으로 드러나는 기관으로 보아 내부구조와 연관시켜 오행 각각에 목(目), 설(舌), 구(口), 비(鼻), 이(耳)를 짝을 짓게 된다. 이음(二陰)은 전음(前陰)과 후음(後陰)으로 비뇨생식기와 항문을 말하는데 신(腎), 방광(膀胱)과 연관된 임상적 경험에 근거한 분류라 볼 수 있다.
근(筋), 맥(脈), 육(肉), 피(皮), 골(骨)은 오체(五體)라 하여 몸통을 이루는 구조물로 인식하였는데 이는 흉복강(胸腹腔)의 안과 밖을 음양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속하는 구조물을 다섯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어우러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신체 내부인 흉복강안에는 장부(臟腑)가 있는데 장과 부를 각각 오행으로 구분하여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 그리고 담(膽), 소장(小腸), 위(胃), 대장(大腸), 방광(膀胱)을 서로 짝을 지우고 음인 장(臟)과 양인 부(腑)를 각각 다섯으로 분류하였는데, 이 또한 음양오행을 동시에 고려한 분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에 배치시킬 수 없는 흉복강과 두개강(頭蓋腔)의 구조물인 뇌(腦), 수(髓), 여자포(女子胞) 등은 기항지부(奇恒之腑)로 별도로 구분하고 있다.
2) 생리기능의 설명
인체의 생리는 흉복강안에서 정기(精氣)를 만들어 저장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장부와 신체 내외의 연결기능을 담당하는 경락에 의하여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장부와 경락은 생리기능을 유지하는 주요한 구조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기능 혹은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이 된다. 물론 구조로서의 기관이나 기능 혹은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서양의학의 장기처럼 구조에 의하여 결정되는 기능만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며 다섯으로 구분되는 기능이나 역할의 하나를 담당하므로 생리기능이 반드시 장부라는 구조에 일대일로 대응되는 기전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생명이 유지되는 주 기능은 신체내의 정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정기가 각 장부에 배속되어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는 과정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하지만 정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여하는 부(腑)의 기능보다 정기를 저장하고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는 장(臟)의 기능에 더 주목하고 그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생리기능을 파악하는 관건이 된다. 따라서 오장(五臟)은 오행의 순서대로 정(精)으로 분류되는 혈(血), 신(神), 영(營), 기(氣), 정(精) 그리고 신(神)으로 분류되는 혼(魂), 신(神), 의(意), 백(魄), 지(志)가 분류되며, 이들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는지를 외부에서 관찰하여 오행의 순서에 따라 근(筋), 혈맥(血脈), 기육(肌肉), 피모(皮毛), 골(骨) 그리고 노(怒), 희(喜), 사(思), 비(悲) 혹은 우(憂), 공(恐) 혹은 경(驚)을 짝 지워 오행―오장―(정→오체)―(신→칠정)의 관계로 생리기능을 설명한다.
오행의 목·화·토·금·수 순서에 따른 선후의 순환관계는 상생상극이 적용됨으로써 순환과 동시에 복합적인 유기적 관계로 발전하여 상호작용에 따른 생리기능의 평형이 유지된다는 설명방식이 성립된다.
생리기능을 목·화·토·금·수의 순서에 따라 선후의 단순한 일회성의 직선형식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의 변화처럼 생(生)→장(長)→장(壯)→노(老)→이(已)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경우에 활용한다.
3) 병리변화의 설명
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신체내 정기(正氣)와 외부의 사기(邪氣)의 평형상실이나 신체내 정기의 평형이 상실이라고 보아, 자연의 비정상적인 기후변화인 사기를 오행의 순서대로 풍(風), 서(暑) 혹은 화(火), 습(濕), 조(燥), 한(寒)로 분류하여 육음(六淫)이라 하였다. 물론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후변화가 시기적으로나 그 변화량이 정상적 범위 안에 있을 때는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므로 육기(六氣)라고 하며 오행에 따른 분류는 육음과 같다.
병의 발생이나 발전과정의 기전을 설명할 때는 상생상극의 승모(勝侮)의 관계를 활용하여 정기(精氣)가 부족하게 되면 다른 장부까지 영향을 미쳐 병을 일으킨다고 본다. 사람의 일생인 생→장→장→노→이의 과정도 정기(精氣)가 계속 소모되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정기부족을 병의 원인으로 본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사람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므로 감정변화가 지나치거나 부족하게 되면 질병이 초래되므로 오행순서에 따라 오장 각각에 노, 희, 사, 비 혹은 우, 공 혹은 경을 연관시키고 이들 감정이 지나치게 나타나는 경우는 각 감정과 짝이 되는 장의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반대로 지나친 감정변화는 짝이 되는 장의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감정의 변화로 인한 병에도 승모관계를 활용하여 그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 다른 장부까지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오장사이에서 장과 장이 합병이 되거나 병이 전이되는 경우도 오행의 상생상극의 원칙에 따라 설명하는데, 예를 들어 간신구허(肝腎俱虛)와 같은 상생관계의 합병, 시간에 따른 전이를 고려한 신병급자(腎病及子), 자도모기(子盜母氣)로 구분하는 것이다.
4) 진단과 치료
진단은 질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체내 어느 장부의 병인지를 판단하는데 주로 외부로 드러나는 병적인 현상을 근거로 삼게 된다. 오행에 따른 색상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은 각각 오장에 짝을 지워 진단에 참고하는데 이 색상은 안면이나 설태(舌苔)색에서 구체적으로 활용된다.
생리기능이 반영되는 부위인 오체(五體) 혹은 오관(五官) 등에 이상이 나타나면 오행으로 짝이 되는 오장의 이상을 판단할 수 있고, 오화(五華)인 조(爪), 면(面), 순(脣), 모(毛), 발(髮)의 이상은 오장의 상태가 밖으로 드러난다고 보므로 예를 들어 눈에 이상이 있으면 이와 관련이 있는 근(筋), 조(爪)에도 이상이 있는지 살피고 이는 간의 기능 이상으로 인한 병이라고 진단하게 된다. 진단에 참고하는 맥상도 오행 각각에 현맥(弦脈), 구맥(鉤脈), 연약맥(軟弱脈), 모맥(毛脈), 석맥(石脈)으로 배속시킨 것은 계절과 오장의 관계를 비롯하여 기후변화에 따른 맥상의 편차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치료에 있어서 오장 그 자체의 정기가 부족하거나 외부의 사기로 인하여 병이 발생하면 장(臟)의 정기를 보충하거나 과잉된 사기를 제거하는데 이때에도 항상 오행간의 상호관계를 감안하여 치료를 구상하게 된다. 오장간의 상호관계를 고려한 치료는 한약이나 경혈(經穴)의 선택 및 조합에서 구체적으로 응용된다.
5) 예방과 양생
질병예방은 적극적인 양생 즉 생기(生氣)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므로 우선 외부의 사기가 침범하지 않도록 자연의 기후변화에 맞추어 생활해야 하고, 오장의 정기를 지나치게 소모시키지 않도록 보존하며 감정변화가 지나치지 않도록 하면 신체 내 오장간의 유기적인 생리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사계절에 따른 구체적인 양생원칙을 제시하였다. 봄에는 식물들이 싹을 틔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침시간은 조금 늦게 하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는 것이 좋고, 여름에는 만물이 꽃을 피우므로 만물이 번영하므로 취침시간은 늦어도 좋으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 좋고 노여움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는 기운과 같은 찬 기운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으며 저녁에는 기운을 제대로 거두어야 하며, 겨울에는 모든 만물이 찬 기운 속에서 겨울 잠을 자는 것처럼 양기가 몸속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늦게 일어나고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땀을 흘려 양기를 소모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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